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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한다는 것은 권력이다.

  • 4월 6일
  • 3분 분량

니제르의 기타리스트 Mdou Moctar의 멋진 공연 실황


보통 국내 기관에서 다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만든다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이렇게 네 개 언어를 채택 하는 것이 '국룰'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녹음과 편집이 가능할 정도로만 네 언어를 익힌 상태에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원어민 성우분들이 이미 한국어에 유창하신 경우가 많고, 정 어려우면 번역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어를 포함해 인터넷 상 언어 데이터가 많은 언어들은 제가 더듬 더듬 작문해서 말 하는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습니다. 편집을 할 때에도 익숙한 한자와 알파벳으로 알아볼 수 있어 생각보다 수월합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더 이상 어학공부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인터넷 상 언어 데이터가 많은 언어들'에만 해당되는 경우입니다. 소위 '한중일영'과 일부 유럽어의 따뜻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체감 상 먼 옛날, 하멜 표류기 시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언어들이 기술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 일텐데요.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거나, 많이 사용되더라도 인터넷에 데이터를 많이 남기지 못했거나, 영어 등 외국어 번역 수요가 적어 번역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을 조금 더 부정적으로 바꿔보면 국가 규모가 작거나, 국가에 정보통신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강대국이 접촉해오지 않는 국가들은 AI가 널리 사용되는 세상에서도 언어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일상 언어는 그 국가나 부족의 언어를 쓰되, 학술적인 내용(교과서나 논문 등)은 번역 없이 영어로만 표기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기도 쉽지 않고 이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운 지식들이 사회 안에서 시너지를 내기 더 어렵다고 들었어요. 이런 단적인 사례를 보면 언어가 여러 곳에 통한다는 것은 녹음 현장을 떠나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네요.


이번에 한중일영의 울타리 밖에 있는, 여러 언어 작업을 준비하면서 이 튼튼한 울타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이 4개 국어를 기본으로 삼지만 사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특히 관광지 밖에서 만나는 외국어는 조금 다르지 않나요? 서울 북동쪽에는 러시아어와 몽골어를, 경기 남부에는 태국어와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도 정말 흔하게 접합니다. 제조업이 발달한 곳에는 데바가나리 문자를 기반으로 한 남아시아 언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 제 좁은 식견 밖에는 더 많은 언어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쓰이고 있을겁니다.


저도 한중일영이라는 안락한 세상에서 일하는 것이 더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관람객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외국어 가이드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사용률이 적다는 후기를 들으면 더욱 고민하게 되지요. '혹시 전시 기관에 정말 일본인 관람객이 많아서 일본어 가이드를 구축하신 건가요?'라고 감히 묻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근로자들은 한국어로 들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하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의 언어는 일부러 훈련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생활 한국어'로 언어를 먼저 접하는 많은 이주민들에게는 더 어려울 거에요. 결국 본인들이 가장 익숙한 언어로 들어야 전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시 현장에 새로운 언어를 도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모국에서 해당 전시에 큰 리소스를 투자하는 것입니다. 너무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방법이죠?ㅋㅋ 이 방법의 단적인 예가 신 이집트 대박물관입니다. 이 세계적인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는 아랍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를 제공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이지만 박물관 건설에 꽤 많은 액수를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투자는 금전적인 이득으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내지요. 당연히 모든 국가들이 이렇게 무형의 것에 지출할 수 없고, 반대로 국내의 모든 기관이 투자를 바라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기관이 먼저 지원 언어의 폭을 늘린다면 어떨까요? 이것도 꿈 같은 소리이긴 한데, 앞서 말한 방법보다는 훨씬 확률은 높아 보입니다. 한 때 열풍이 불었던 쉬운 해설만큼만 시간을 들인다면 충분히 투자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성과가 굉장히 가시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다국어 Transcribe(오디오를 받아적는 것) API와 하루종일 싸웠던 PD의 깊짧생(깊은데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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